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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2년 전, 국립 중앙 박물관 같은 장소에서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다녀왔고, 이번에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모두 경험하고 싶다는 저의 로망이 있긴 합니다. 저의 직업과는 전혀 연관은 없습니다.ㅎㅎ
벌써 3년 전이네요...제가 연말 겨울여행으로 동유럽을 다녀오면서 처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리는 2번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전시회를 다녀오게 되었고요.
혹시나 저의 동유럽 여행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구경하시면 됩니다^^
솔직하게 그림 잘 모릅니다... 그냥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된 관심일 뿐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인 쿠스타프 클림트 의 '키스' 그림을 보고 너무 따뜻한 느낌을 받아 살짝 감동받았던 그림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에곤 실레의 그림은 뭔가 우울해 보이는 느낌이 많이 들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 입니다.
비엔나에서도 레오폴트 미술관에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고, 체스키크롬로프에서도 에곤실레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히 이번 전시를 알게 되어 동유럽 여행을 같이 했던 친한 언니와 함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건물 내부로 입장하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어플을 설치하고, 개인 이어폰을 사용해도 되고, 따로 기기를 빌려도 됩니다. 비용은 3,000원 지불해야 합니다. 저는 모두 대여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 오디오 대여를 할 때에는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신분증이나 본인명의의 카드를 맡긴 후, 대여 기기를 반납할 때 다시 받아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일행분이 계시다면, 일행 중 한 명만 있어도 됩니다.
요즘 실물카드 없이 다니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꼭 누군가는 실물 신분증 또는 본인명의의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제가 신분증, 실물카드 모두 있었기에 무사히 대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런 모양의 이어폰은 처음 사용해 보는데, 귀가 크신 분들은 불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귀가 작아서 딱 맞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귀가 아프긴 하더라고요..
저는 착용 방법을 처음에 헤매서 사진 올려봤습니다^^
본격적인 관람 후기와 소소한 정보들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정치, 사회, 회화, 음악,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와 전복이 일어난 시기라고 합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이트, 클림트, 쇤베르크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비엔나에서 모여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는, 총 5부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부.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
2부.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
3부. 일상의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
4부.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 개척자들
5부.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
지금부터 각각 어떤 그림과 포스터, 공예품 등이 있는지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1.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
처음 시작은 클림트의 그림으로 시작했습니다. 입구에 처음 새겨진 클림트의 한마디와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듯한 여인의 그림이 보입니다. 바로 클림트의 여자 에밀리 플뢰게입니다. 플뢰게는 비엔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클림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합니다.
클림트의 초상화에서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습입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당시 유행하던 여성들의 패션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엔나 분리파는 전시회를 열어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사진 제일 앞에 보이는 포스터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포스터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 포스터를 벤치마킹한 다른 작품 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비엔나 분리파 회원들의 사진입니다. 역시 예술가라 그런지 포즈가 남다릅니다.
2.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는 유럽, 아시아 지역까지 여행하며 새로운 예술을 접하고, 당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오스트리아를 그린 풍경화가 탄생했습니다.
전통 양식을 따르던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새로운 도전을 반대했고, 반대로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는 새로운 도전과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에 따른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모더니즘으로 발전하는데 시초가 되었습니다.
3. 일상을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탄생
'언젠가는 생필품도 예술가에게 주문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요제프 호프만-
이 말처럼, 우리는 현대에도 가정에 사용하는 가구들을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 가구가 있을 줄 생각도 못했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자까지 보게 되어 너무 놀랐습니다.
4. 강렬한 경험, 표현주의의 개척자들
보수적인 아카데미 교육에 불만이 있던 에곤실레는 1907년 클림트를 만나 예술 인생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둘은 28살의 나이차에도 친구가 되었고, 클림트는 실레가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실레는 신예술가 그룹을 만들어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하며, 비엔나 예술계의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역할 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묘하게 위에 의자에 앉아있는 두 여인의 그림을 보면서 멕시코 화가의 프리다 칼로 자화상이 생각났습니다. 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활동시기가 겹치나?? 같은 시대의 예술가인가?? 의문만을 남긴 채 마지막 에곤실레의 작품으로 넘어갔습니다.
5.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
에곤실레는 초반 인상주의의 영향을 미친 작품을 그렸지만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선 인간의 감정을 자신만의 선으로 표현해 독창적인 예술가로 알려졌습니다. 실레의 드로잉을 보면 저는 개인적으로 난해하다?? 정말 독특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왜 누드 드로잉을 그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책에서 실레의 다양한 드로잉을 봤을 때 한국 정서상 대부분의 드로잉이 전시하기 적합하지 않아서 아마도 몇 점만 전시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교걸에 가까운 제가 올리지 못한 작품이 있지만, 그 그림에서 아마도 실레가 말년에는 조금은 안정적인 느낌의 드로잉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시를 끝내고 마지막 영상으로 전시의 끝을 알립니다. 사진으로 영상을 대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총 191개의 작품이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관람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고, 전시장 옆에 조그마한 아트샵이 있었는데, 아쉽게 촬영은 못했네요 ㅠㅠ
전시가 시작되기 전 잠시 구경했을 때 몇 가지 엽서들이 보였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엽서 하나 사진 찍어 봤습니다. 붉은색 컬러라 눈에 띄었는데요, 전시를 관람하면서 보니, 이 엽서의 의미가 복을 가져다주는 의미라고 합니다.
위의 문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이며, 만국 공통 돼지는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인가봅니다. 오스트리아 에서도 돼지는 복을 가져다 주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전시의 마지막을 알리는 문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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